제주포럼C의 제9회 제주탐방 '돌 속에 숨어있는 제주의 문화를 찾아서' 탐방 후기를 쓴 뒤 여러분이 전화와 메일로 문제를 지적해주었습니다.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탐색하고 연구하는 재야의 연구자들이 많다는 것을 확인하는 기쁨이 컸습니다.
반면 글을 쓴다는 것은 여전히 조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음도 거듭 확인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탐방후기 가운데 제주시 삼양동 '불탑사 오층석탑'과 관련한 명칭과 내용을 다음과 같이 고칩니다.
문화재청이 정한 문화재 명칭을 부여하는 기준에 따르면 사찰이 현재 남아 있는 경우에는 ‘○○사’로, 폐사된 경우에는 ‘○○사지’로 명칭을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불탑사 오층석탑'은 '원당사지 오층석탑'이 맞는 표현입니다.
오층석탑의 기원에 대한 설명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오층석탑이 "고려 충렬왕 26년(1300년) 에 원나라에 공녀로 끌려가 황후가 된 기(奇)씨가 태자를 얻기 위해 세운 탑"으로 이후 기황후는 아들을 얻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연대가 맞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고려 여인 기씨는 고려의 관료였던 기자오(奇子敖)의 딸로 고려 충숙왕 복위 2년(1333년) 고려의 내시 고용보(高龍普)의 힘으로 원 왕실의 궁녀가 된 뒤 순제(順帝)의 총애를 받아 딸을 하나 낳았다는 것입니다.
1335년 황후가 죽자 순제가 기씨를 황후로 책봉하려 했으나 권신(權臣) 바이옌의 반대로 실패했습니다. 이후 기씨는 1339년 태자 아이유스리다례를 낳았고 이듬해인 1340년 4월 11일 제2황후에 책봉됐다고 합니다. 특히 기씨가 정후(正后)가 된 것은 1365년 12월의 일입니다.
따라서 기황후가 태자를 얻기 위해 원당사를 짓고 오층석탑을 세웠다는 내용은 역사적 사실로 단정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이러저러한 전설이 있다"고 해야 정확한 소개가 될 것입니다. 아니면 원당사의 창건 연대가 1300년이 아닌, 적어도 태자를 낳기 전인 1338년 이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기씨의 신분도 "순제의 총애를 받던 원나라의 고려 출신 궁녀 기씨"로 표현해야 맞습니다.
이런 내용을 전해주신 분들은 제주흥사단 대표 고영철 선생(남광초등학교 교감)과 조천초등학교 교래분교 강순문 선생, <제주역사기행>의 저자 이영권 선생 등이었습니다.
잘못 기록한 탐방후기가 인터넷 등을 통해 사실처럼 전해지지 않기를 바라며 잘못을 지적해주신 여러분께 거듭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프로필>
제주포럼C 공동대표
전 한겨레신문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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