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00:04 (금)
돌 속에 숨어있는 제주의 문화를 찾아서
돌 속에 숨어있는 제주의 문화를 찾아서
  • 고희범
  • 승인 2011.03.16 13:34
  •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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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범의 제주이야기] 제주포럼C 제9회 제주탐방 후기

제주의 돌. 사방을 둘러봐도 흔하디 흔한 돌. 땅을 파도 파도 끊임없이 나오는 돌. 거대한 암석에서 잔 돌에 이르기까지 돌은 제주인의 삶과 제주의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 돌은 과연 제주인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어떻게 미쳤을까. 우리 선조들은 돌을 어떻게 활용했을까. 
 
▸ 화천사 석상 5기
제주시 회천동 화천사 경내에는 '석상 5기'가 모셔져 있다. 60~65cm 높이의 현무암 석상은 모두 5개로 돌의 모양에 따라 각각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눈 코 입을 음각으로 새기고 얼굴 형태를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어 편안한 느낌을 준다. 
 
이 석상은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었다. 사찰에 모셔져 있으니 '불상'이라고 할 수도 있고, 이곳에 오기 전에는 당에 모셔져 있었을지도 모르니 '신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모양도 제각각이어서 여러 곳에 세워져 있던 것들을 모아 놓은 것일 수도 있다.

 

 
 
 
 
제주인의 예술성을 보여주는'5석상'. 돌 모양에 따라 자연스럽게 얼굴을 음각으로 형상화했다.

'당 5백 절 5백' 시절, 제주목사 이형상이 제주 전역의 당과 절을 훼철할 당시 어느 곳엔가 서 있다가 불에 타지 않은 채 남았던 것을 이곳 화천사에 옮겨 세운 것이다. 마치 피난민을 거두어들이듯 이 석상을 거두어준 불교 사찰에 대한 예의일까.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을제에서는 이 신상에 제사를 봉행하지만 다른 마을과 달리 제물로 육류를 쓰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 '5석상'은 마을의 특수한 신앙석으로 해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 별방진
돌은 제주를 지키는 성벽을 축조하는 데 유용했다. 조선시대 군사적 요충지에 설치된 9개의 진에는 성곽이 세워졌다. 중종 5년(1510년) 목사 장림이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구좌읍 하도리에 '특별방어진지'를 뜻하는 '별방진'을 설치했다. 정의현의 도읍을 성읍으로 옮긴 뒤 제주 동부지역의 안보가 허술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도내 모든 진에 주둔하던 군사들이 무예시험을 치르기도 했던 별방진은 군사훈련과 경계를 특히 강화했던 점으로 미루어 우도에 진을 친 왜구의 침입에 각별하게 신경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 둘레 1km의 타원형으로 높이 4m의 성곽을 갖춘 별방진은 다른 진에 없는 공격용 치성(雉城)을 갖추고 있었고, 제주에 물이 귀한 탓에 성곽 주위의 해자(垓子)는 구덩이를 파고 물을 대는 대신 가시나무를 심었다.

 

성곽 밖으로 툭 튀어나온 부분이 성벽을 타고 넘어 들어오는 적을 공격하기 위한 치성(雉城)이다.

문화재청이 별방진을 복원했으나 고증을 전혀 따르지 않아 성곽의 기본적인 기능도 갖추지 못한 모양으로 만들어놓았다. 적의 침입을 막는 '미석'이나 적의 화살을 피하는 동시에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여장'도 없이 돌로 벽만 쌓아놓은 것이다. 그것도 돌을 정교하게 깎아 당시의 성곽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만들었으니 이를 '복원'이라 할 수 없다.

 

기본조차 갖추지 못한 모양으로 복원된 별방진. 제주도와 협의없이 진행된 사업의 결과다.

복원은 철저한 고증에 따라 그 시설물이 갖추고 있던 기능과 외형을 최대한 살려내는 것이어야 한다. 비록 그 길이는 짧지만 원형이 잘 보존된 화북진을 보면 실제와 복원됐다는 성곽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언젠가 성곽을 다시 허물어야 하게 생겼으니 기본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제주의 관문인 화북포구 근처의 화북진. 제주를 출입하는 이들이 묵을 수 있는 객사도 갖췄다.

하도리 일대의 밭담은 다른 마을보다 큼직큼직한 돌이 잘 다듬어진 모양인 데다 높이도 키를 넘는다. 일제가 제주항을 만들면서 제주성곽을 헐어내고 그 돌을 이용한 사실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곳 주민들이 필요도 없어 보이는 별방진성의 돌을 밭담으로 이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비석거리 주변을 장식하고 있는 축대와 담장도 모양 좋은 돌로 쌓인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하도리의 품위있는 밭담. 밭에서 나온 돌로 엉기성기 쌓는 제주도 특유의 밭담 모습이 아니다.

▸ 불탑사 5층석탑
돌은 종교적 상징인 불탑으로도 거듭났다. 특히 제주의 돌인 현무암은 결이 질겨 조각하기가 쉽지 않다.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제주시 삼양동 불탑사의 5층석탑은 제주에 있는 유일한 불탑이자, 보물 제1187호로 지정돼 있다. 기단 위에 5층으로 탑신을 세운 것으로 각 층 지붕돌의 귀퉁이 끝을 날렵하게 올린 모양의 이 탑은 고려시대 양식을 따랐다.
 
고려 충렬왕 26년(1300년) 원나라에 공녀로 끌려가 황후가 된 기(奇)씨가 세운 탑이다. 원나라 순제가 태자가 없어 고민 중이었는데 북두칠성의 명맥이 비치는 삼첩칠봉(三疊七峰)에 탑을 세워 불공을 드려야 한다는 승려의 비방을 받아 이곳에 원당사를 짓고 이 탑을 세운 것이다. 기 황후는 아들을 얻었고 이로부터 아들을 원하는 여인들의 성지가 됐다는 것이다. 원당사는 3차례의 화재로 소실됐고 1914년 사찰이 중건되고 불탑사로 이름을 바꿨다.

 

 

 

도내에 하나밖에 없는 불탑인 오층석탑. 지붕돌 귀퉁이마다 풍경을 달았던 구멍이 있다. 탑의 위 3개층 지붕돌의 구멍이 있던 부분이 떨어져 나갔을 뿐 원형이 그대로 남아있다.

▸ 화북포구
돌은 제주를 육지부와 연결하는 통로, 포구를 설치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자재였다. 제주시 화북동 화북포구. 제주에 파견된 관리와 유배객들이 들어오고, 여느 항구가 그렇듯이 재회의 기쁨과 이별의 아픔이 넘쳐나던 현장이다. 제주목관아에서 5km 거리에 있어 부임하는 지방관들이나 제주목에 인계되는 유배객들이 이용하기에는 가장 가까운 포구였다.
 
이곳을 드나드는 이들의 안전과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화북진이 이웃해 설치됐고, 진성 안에 배의 출항을 기다리던 객사 환풍정(喚風亭)과 바다를 감시하거나 물때를 살피던 망루 망양정(望洋亭)이 있었다. 포구 근처에는 배들의 입출항을 관리하던 영송정(迎送亭)이 있었다.
 
화북포구는 조선시대 조천포구와 함께 제주의 대표적인 관문이었으나 포구가 너무 비좁아 바람이 심할 때면 배들끼리 부딪쳐 파선하는 사고가 발생할 정도였다. 영조 11년(1734년) 포구 확장공사를 벌인 목사 김정이 직접 등짐으로 돌을 지어 나르며 부역을 독려했다. 이 공사가 마무리될 무렵 김정은 임기를 마치고 이임하게 됐는데 이 공사로 과로한 것이 원인이 되어 화북진 안 객사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방파제 근처에 애도의 뜻을 담은 공적비가 세워져 있다.

 

두차례의 증설로 그 규모가 한층 커진 화북포구. 맨 안쪽 방파제가 최초의 것이다.

▸ 동자복
제주성을 지키듯 제주성 밖 동서쪽 언덕에서 마주보고 서 있는 '동자복' '서자복'은 미래불인 '미륵상'인가, 재물 복을 안겨주는 '자복(資福)상'인가. 제주시 동쪽의 건입동 산지포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과 서쪽의 용담동 동한두기 언덕 위에 서 있는 동자복과 서자복은 3m 남짓한 우람한 키에 차양이 둘러진 모자를 썼다. 커다란 귀와 우뚝한 코, 꼭 다문 입에 부드러운 눈매로 제주 시내를 내려다보듯 서 있다. 주민들은 '복신미륵' '자복미륵' '자복신' '돌미륵' 등 여러 이름으로 부른다.
 
소매가 길게 늘어진 예복을 입고 있고 두 손은 가슴에 모으고 서 있는 모습은 미륵상을 연상케 한다. 제주성안 백성들을 감싸안는 듯 자애로운 미소를 머금은 미륵상을 보며 미래 세계의 행복을 기대하며 현세의 고통을 잊었을지도 모른다. 또 다른 이름인 자복상으로서 바다와 더불어 살아온 주민들의 무사안녕과 풍성한 수확을 기원했던 신상일 수도 있다. 고대 탐라시대에 육지부와 왕성한 교역을 했던 제주성 동서쪽 포구 근처에 세워졌다는 점에서 그렇다.

 

건입동의 동자복. 동자복 앞에 있던 개인주택이 최근에 헐리면서 본래의 위치를 되찾았다.

제주성안 백성들을 동서쪽에 마주 서서 지키고 있던 자복상은 이제 고층건물들이 들어선 제주시의 원도심을 지키기에는 힘에 부쳐 보인다. 하지만 약간의 공간을 확보해 앞이 제법 트인 언덕에 우람한 모습으로 버티고 있는 동자복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 미국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이나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의 '예수상'처럼 당시 주민들은 동자복과 서자복을 제주의 랜드마크로 여겼던 것은 아닐까?
 
끝없이 이어지는 돌담을 두고 민속학자 고 김영돈 선생은 "중국의 만리장성을 '황룡만리'라 한다면 제주의 현무암 돌담을 '흑룡만리'라 할 수 있다"고 했다. 2009년 제주대 고성보 교수가 조사한 밭담의 길이는 2만2천여km (5천5백리)였다. 여기에 고려 때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확장을 거듭한 환해장성과 말 사육을 위해 쌓은 세 겹의 잣성, 골목 골목 이어지는 집담까지 합치면 흑룡만리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돌은 제주인의 삶 속에 다양한 방식으로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농업에서부터 건축, 어업, 축산, 통신, 신앙, 예술, 안보, 죽음에 이르기까지 돌은 제주의 바람처럼 늘 제주인과 함께 해온 제주의 상징이다. 제주의 돌은 제주의 자연이며 역사이며 문화, 그 자체였다.

 

<프로필>
제주포럼C 공동대표
전 한겨레신문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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