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동행은 사회 곳곳에 산재해 있는 차별의 벽을 허물고, 현실사회의 장애요소를 허무는 긴 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가요, 지치면 쉬었다 가면 되지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마음을 벽을 허물고,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인터넷신문사 미디어제주가 26일 아홉 번째 발걸음을 옮겼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식 공동의 선(善)을 추구하는 미디어제주는 지난 2007년부터 매해 2차례 '아름다운 동행'을 마련하고 있다.
장애인과 함께 도내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며, 이동과 시설 접근에 대한 어려움을 찾아내 이를 개선하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미디어제주와 제주특별자치도지체장애인협회(회장 부형종)가 공동으로 주최한 이번 행사에는 국제로타리 3660지구 제주한미모로터리클럽(회장 김은미)이 함께해 그 의미를 더했다.
지난 2003년 2월 창립한 한미모클럽은 한국에이즈퇴치연맹 제주도지회와 한국신장애인 제주협회와 협약을 맺고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5년에는 도내 300여명의 장애인들을 초청해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등 도내 3번째 여성클럽의 면모를 봉사를 통해 발휘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 마련된 제9회 아름다운 동행 ‘함께하는 제주기행’ 행사에는 장애인단체 관계자 및 장애인 가족 60여명과 자원봉사자 등 80명이 참가했다.
기상청의 '비' 예보를 뒤로하고 이날 오전 하늘은 맑은 얼굴로 참가자들을 맞이했다. 오전 9시30분 제주종합경기장에 모인 참가자들 얼굴에도 활기가 돌았다.
확성기를 손에 쥔 성일승 미디어제주 대표이사는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에 함께 동행하며 마음의 문을 여는데 이번 행사의 의미가 있다"며 "오늘 함께 하는 걸음을 통해 서로 마음을 조금씩 열길 바란다”고 전했다.
부형종 제주도지체장애인협회장은 인사말을 대신해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 주는 아름다운 동행행사가 아홉번째로 이어졌다”며 “지체장애인과 미디어제주가 더욱 끈끈한 정을 다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2대의 대형버스에 나눠 탄 참가자들은 아홉 번째 동행의 첫 방문지인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의 ‘일출랜드’로 향했다.
따스한 날이 반겨주듯 버스 밖 풍경도 봄기운 재촉했다. 재빠른 버스와 달리 장애인의 시야에 들어온 차장 밖 풍경은 ‘느림’의 도움을 받아 기억 속에 남는 듯 했다.
지난 2007년 중풍으로 오른쪽 팔과 다리가 불편해진 박용배(51. 장애2급)는 일출랜드 방문이 남다르다. 과거 정상의 몸 일 때 다녀갔던 곳이기 때문.
박씨는 “몸이 좋았을 때는 도내 많은 관광지들을 돌아다니며 추억을 쌓았다. 재방문이지만 즐거운 시간이 될 것다"며 설레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참가자들이 도착한 일출랜드는 미천굴을 중심으로 제주도 동부지역의 관광산업을 이끌고 있는 대표 관광지다.
특히 미천굴은 지하의 신비와 더불어 학술적, 관광적, 문화적 가치를 지닌 제주도의 중요 자원 중 하나다.
선인장 하우스를 비롯해 10여곳의 잔디광장, 자연석 벤치, 팽나무 그늘, 놀이분수, 도예체험, 아트센터 등 다양한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갖추고 있다.
버스에서 하차한 참가자들은 기념사진을 찍고 곧바로 관광지 안으로 들어섰다. 현장에서 휠체어 대여도 가능해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은 비용없이 이용할 수 있다.
다른 관광지와 달리, 이곳은 장애인들을 위한 입구가 별도로 마련 돼 있다. 경사진 계단을 이용해야 하는 번거로움 없이 곧바로 관광지 안으로 진입할 수 있다.
업체측에서는 장애인들의 불편이 없도록 장애인 전용 도로의 알림판도 마련해 뒀다. 입구에는 장애인을 위한 화장실도 설치돼 있다.
화장실의 입구 넓이도 넉넉해 진입에는 전혀 불편한 점이 없었다. 관광코스도 대부분 콘크리트 바닥으로 시공돼 이동이 자유로웠다.
야외휴양형 관광지의 특성상 일부 흙으로 시공된 관람로가 있었으나, 휠체어 이동에 큰 애로사항은 아니었다.
다만, 일출랜드의 얼굴마담격인 ‘미천굴’ 관람은 장애인들이 접근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지하에 있는 굴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장정 4명이 휠체어를 들고 이동해야 한다.
주변의 도움없이 수 십여개의 계단을 내려가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안전사고에 대비해 참가자들은 미천굴 관람을 다음으로 미뤘다.
장애1급의 아내 고혜숙(60)씨를 책임지고 있는 보호자 전상덕씨(60)는 “휠체어로 이동할때는 작은 돌맹이 하나도 엄청난 장애물이 될수도 있다”며 “주변이 도움없이 지하의 굴 등에 들어서는 것은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휠체어를 밀어주는 데에도 요령이 있고 사전교육도 중요하다”며 “장애인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 가장 선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줄곧 아내의 옆에서 두발을 대신한 전상덕, 고혜숙씨 동갑내기 부부는 행사 내내, 잉꼬부부 모습을 보이며 부부애를 과시한 커플이다.
몸이 불편한 아내를 위해 전씨는 관람지 내에 설치된 안내표지판 등을 일일이 읽어주는 등 함께한 솔로남(男)들의 부러움을 샀다.
한미모클럽의 김희정 도우미의 안내를 받으며 이동한 안순선(53. 장애3급)씨는 민속촌에 접어들자, 리본을 꺼내들었다. 볏집에 리본을 달아 소망을 비는 이벤트에 참여한 것.
이어 한미모클럽 회원들과 함께 아트센터를 향한 안씨는 “애인에게 줄 선물 사야 한다”며 천연 동전지갑 2개를 구입했다.
안씨는 예쁘게 포장된 지갑 2개를 휠체어 뒤에 선 한미모클럽 회원 2명의 손 위에 고스란히 올려놨다. 안씨는 “여자도 애인이 될 수 있다”며 웃었다.
애인이 된 이재은, 김희정 회원은 “선물보다 우리를 생각해주는 마음이 너무도 고맙다”며 “오히려 선물을 해드려야 하는데, 생각지도 못한 기쁨을 얻어 오히려 죄송하다”고 말했다.
동행 속에서 우정과 추억을 축적한 참가자들은 식사를 위해 인근 성산일번지 식당으로 향했다.
맛있는 식사를 뒤로하고 버스로 향하려던 순간. 생각지 못한 소란이 한바탕 일었다. 마이크를 쥔 김은미 한미로클럽 회장이 분위기를 주도했다.
장애인 참가자들을 위한 경품행사가 펼쳐진 것. 미리 준비한 참가자들의 이름표를 1개씩 꺼내자 당첨자들의 웃음소리가 식당 안을 가득 매웠다.
보조등인 스탠드를 비롯해 가방과 야외용 도시락통, 주유상품권, 4인가족 식사권 등 풍성한 선물이 전해지면서 또 하나의 재미가 더해졌다.
식사 후 참가자들은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에 위치한 ‘트릭아트뮤지엄’으로 향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이곳은 국내 최초의 트릭아트 체험형 박물관이다.
클림트와 반고흐 등 이름만으로 설레는 서양 미술 거장 50인의 원작을 환상의 묘화 기법으로 패러디한 테마관을 갖추고 있다.
직접 감독 겸 배우가 돼 사진도 찍으면서 시각적 불가사의 현상을 몸소 체험할 수 있다. 모든 작품을 만질 수 있고 사진 촬영도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실내 박물관의 특성상 장애인들의 이동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단, 입구가 협소해 휠체어가 진입하기에는 다소 답답한 감이 있었다.
화장실은 남녀 장애인이 따로 이용할 수 있도록 분리돼 있다. 남녀화장실 마다 장애인 전용 칸을 갖추고 있어 교차사용에 대한 불편은 없었다.
박물관 내부로 들어간 참가자들은 몰려든 관람객들로 다소 소란스럽다는 분위기를 느꼈다. 이는 실내라는 특성도 감안해야 하는 부분.
젊은층에 인기를 높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밝은 얼굴로 카메라를 찾던 분은 오복수(71. 지체3급)할머니이셨다.
연하의 남편인 주충실(69) 할아버지와 김진숙 미디어제주 편집팀장의 보호를 번갈아 받으며 이동하신 오 할머니는 다채로운 미술품에 눈을 떼지 못하셨다.
천사의 날개 작품 앞에서는 어린이 마냥 행복한 모습으로 하늘을 향해 날개짓을 하기도 했다. 이를 지켜본 주 할아버지의 눈에도 웃음 낀 주름이 생겼다.
주 할아버지는 행사 도중 가끔씩 자취를 감춰 오 할머니가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어디세요?”라는 말을 여러번 나오게 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때마다 주 할아버지는 그림자처럼 나타나 할머니의 휠체어 손잡이에 양 손을 올려놓으셨다.
가족단위로 행사에 참가한 장애인들은 저마다 준비한 카메라를 들고 저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추억을 담았다.
일부 조형물은 계단 위에 위치하고 있어 휠체어를 이용한 장애인들은 접근을 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관람을 끝낸 참가자들은 버스를 타고 첫 집결지인 제주종합운동장 앞에 다시 집결했다. 한데 모인 참가자들은 기념사진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며 다음을 기약했다.
김은미 제주한미모클럽 회장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개념을 떠나 한가족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 하루였다”며 “적어도 상대가 어떤 상황인지,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를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행사로 장애인을 위한 봉사활동에 더 나서야 하겠다는 욕심 아닌 욕심이 생긴다”며 “다음 동행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해, 추억을 나눌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행사가 끝난 후 미디어제주와 한미모로타리클럽은 장애인 회원들이 지켜보는 현장에서 우정결연 협약식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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