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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휴가 '잔 다르크', "나올 수가 없잖아!"
생리휴가 '잔 다르크', "나올 수가 없잖아!"
  • 박성우 기자
  • 승인 2010.11.18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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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취재파일] 행정감사 '생리휴가' 공방전...열쇠를 쥔 이들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임에도 왠지 당연하지 못했다.

분명히 잘못된 지적은 아니었음에도 왠지 생소한 지적이었다.

16일 제주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의 제주시에 대한 행정사무감사에서 강경식 의원은 여성 공무원들이 '생리휴가'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강 의원에 따르면 특별자치도 출범 이후 4년간 생리휴가를 사용한 여성 공직자는 17개 읍면동을 통틀어 단 두 명. 그나마 이 둘 중에서도 한 명은 출근을 했다가 도중에 조퇴한 경우여서 0.75명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상황을 "상관의 눈치를 보느라 정당한 요구를 할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라고 진단한 강 의원은 '유명무실'해진 제도의 존폐까지 거론하며 강한 어조로 개선책을 요구했다.

하지만, 과연 이 같은 요구가 실질적으로 수용될지는 물음표가 뒤따랐다.

이날 감사에서 쏟아진 수 많은 지적들은 대부분 "검토하겠다"라던가 "시정하겠다" 라는 답변이 응대했지만, 유독 이 사안에 대해서 만큼은 뚜렷한 개선 의지가 드러나지 않았다.

특히 김병립 제주시장은 "상관이 눈치를 주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다소 무리가 있다"고 맞서며 "일일이 생리시기를 파악해서 휴가를 줄 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라고 섭섭함을 표했다.

전반적인 분위기로 보아 생리휴가와 관련된 문제가 빠른 시일 내에 진전을 보일 것 같지는 않았다.

'개선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잘못이다'라고 단정 지으며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것은 아니다.

지금같은 상황을 경직된 공직사회의 폐단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겠으나, 혹자는 우리 사회의 정서상 어느정도 감수해야 할 사안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예상하지 못했던 타이밍에 발언대로 올라서면서 "나 또한 30년 동안 공직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생리휴가를 사용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한 고위직 여성 공무원의 발언은 쉽게 들리지 않는다.

김 시장의 답변도 어느정도 일리는 있다. 관리직 공무원들이 일부러 휴가를 빼앗거나 신청을 차단하지는 않았을 것.

하지만 지금의 분위기상 여성 공직자들이 함부로 생리휴가를 신청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고통을 겪으면서도 억지로 참아가며 업무에 매진해야 하는 이들이 있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모난 돌은 깎이기 마련인 우리사회의 정서상,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고도 '비정당한 처우'를 받게 될 것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그 누가 앞장서서 휴가를 달라 외칠 수 있을까.

용감한 '잔 다르크'로 인정받을지, '모난 돌'이 되어 깎여 나갈지 예측해 보자면, 안타깝게도 후자의 의견에 힘이 실린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는 이날 감사장에 모여있던 이들을 포함한 관리직 공무원들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단박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더라도, 조금씩이나마 분위기가 쇄신될 수 있도록 앞장서야 하는 건 눈치를 준다고 오해받은 '윗 사람'들이다.

때때로 휴가를 종용하기도 하면서 '혹시'하는 부담감을 덜어준다면 생리휴가를 시기에 맞게 탄력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업무능률이 향상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생리휴가'가 특수한 요건임을 인정하는 기본적인 마인드 정립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 자발적인 참여가 이뤄져야 함은 두 말할 필요 없겠다.

지금 같이 문제점이 불거졌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문제의식과 해결의지 없이 일상적인 업무를 반복하다 보면, 똑같은 문제가 2020년 행정사무감사에서도 지적될는지 모를 일이다. <미디어제주>

<박성우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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