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4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4.3 때 ‘봉개리’가 ‘함명리’로 바뀌었던 사연 알고 보니…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제주4.3 당시 제주시 봉개마을을 초토화시킨 연대장과 작전참모가 자신들의 이름을 따 마을 이름을 아예 ‘함명리’로 바꿔버렸던 사연이 담긴 사진이 공개됐다.이같은 사연은 제주4.3의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온 팔순의 할머니가 4.3 당시 사진과 성금을 제주4.3평화재단에 기탁하면서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는 과정에서 사진을 통해 확인됐다.9일 제주4.3평화재단에 따르면 4.3 유족인 김춘자 할머니(80)가 최근 재단을 방문, 70년 동안 간직해온 사진 6점과 성금 100만원을 기탁했다.김 할 사회 | 홍석준 기자 | 2019-09-09 18:46 해방공간에서 4·3까지 해방 직후 제주읍의 '성 안'으로 불리던 동문, 서문, 남문 사거리 안쪽 지역인 지금의 제주시 원도심에는 제주도의 모든 주요기관들이 있었다. 제주도의 행정 경제 문화의 중심이었다. 1945년 8월부터 1948년 4월 3일까지 3년이 채 못되는 기간에 이곳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독립국가 건설의 꿈도 잠시, 세계사적인 비극의 싹이 자라고 미디어칼럼 | 미디어제주 | 2015-04-16 13:48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을 모독하지 마세요!" 한국 근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으로 불리우는 4.3. 2003년 4.3에 대한 정부 진상조사보고서가 발간되고, 이어 국가공권력의 잘못을 인정하는 대통령의 사과가 있었다. 반세기가 지나서야 4.3은 역사의 양지로 나왔으나, 아직도 4.3은 끝나지 않았다. 역사적 평가를 되돌리려는 보수우익단체의 끊임없는 책동. 또 진상조사의 미완성.이런 흐름 속에서, 당시 기획특집 | 김두영 기자 | 2009-04-06 09:24 가슴속에 묻어둔 58년의 기억, 그 한맺힌 울분 4.3증언 본풀이 마당 네번째 "항쟁의 역사, 고난의 기억" 28일 오후 제주4.3연구소 주최로 열려“당카름에 완덜 시신들 찾잰 막 해쌈서라는 소릴 듣고, 당카름에 가 보니 옴팡한 밭인데 큰 구덩이가 있고 그 안에 시신들이 흙으로 덮어져 있는데, 갈중이 입은 사람, 국방색 민영으로 만든 쓰붕(바지) 입은 사람...그 죽은 사라들 전부 손발이 묶여 있었습니다 사회 | 윤철수 기자 | 2005-03-28 16:29 처음처음1끝끝